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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의 역사, 추의 역사 - 움베르토 에코..

책 이야기

by v2good 2013. 12. 29.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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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월시아 취미를 갖게되고 난 후에 사물의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생각들을 가지게 되었고

어차피 인간의 아름답고 추함의 결정에 의해 결국 취미로써의 식물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럼 과연 아름답다는 것은 어떤 것이고, 추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움베르토 에코에 의해 설명되는 아름다움과 추함.. 역사적인 그림등을 통해서 두개의 책에서 미와 추에

대해 비교해 놓은 이미지를 통해 미와 추에 대한 인간의 공통된 관점을 일부 읽어낼 수 있지않을까 싶다.

각권 450여 Page에 빼곡히 실린 그림을 따라서 생각들을 모으다보면 제법 나가는 두권의 가격이 

그리 아깝지는 않은 것 같다..

 

먼저 미의 역사에 나오는 서문의 내용을 일부 인용해 본다..

- <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는 - 혹은 <우아한>,<사랑스러운>,<숭고한>,<경이로운>,<화려한> 같은

표현들과 함께 - 우리가 좋아하는 무엇인가를 가리키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이 경우에 아름답다는 것은 선하다는 것과 같아 보이는데, 사실 수세기동안 미와 선은 밀접하게 관련이

있었다. 그러나 일상적인 경험을 토대로 판단할 경우,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만이 아니라 소유하고 

싶어하는 것을 선으로 정의하는 경향이 있다. 서로에 대한 사랑, 정직하게 벌어들인 재산, 세련된 고급

요리 등이 우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경우, 우리는 그 선을 <소유하고> 싶어한다.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 선이다. 고결한 행위가 선하다고 판단되었을 때 우리는 그 일을 하고 싶어한다.

 

다음은 추의 역사의 서문의 일부이다..

- 세기마다 철학자들과 예술가들은 미의 정의를 보태왔고, 덕분에 시간의 흐름에 따른 미적 관념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추(醜)에서는 그러한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기에서 

추는 미의 반대 개념으로 정의되었으나, 추에 관하여 일정 분량이라도 논문을 할애했던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고작해야 추는 주변적 작업에서 지나가는 언급으로 제시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미의 역사는 방대한 이론적 근거들에서 끌어낼수 있지만, 추의 역사는 우리가 어떻게든 <추하다>고

보는 사물이나 사람들에 대한 시각적,언어적 묘사들 속에서 그 자체의 기록들을 찾아내야만 한다. 

(중략) 서구인들의 눈에 아프리카의 제의용 가면은 섬뜩하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지역 주민들에게는 

그 가면이 자비로운 신을 나타내는 것일 수 있다.  

 

사실 책의 관점보다 실려있는 많은 사진들을 가끔씩 다시 살펴보는 것으로 미와 추에 대한 생각을 한번씩

생각해 보게되는 것으로 만족하는 수준이다.. 가끔은 일부를 자세하게, 가끔은 그냥 슬렁슬렁 살펴보면서..

책 소개에 사진을 한장도 추가로 실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아래 같이 사진을 찍어본 두책의 표지만 보고서도 미와 추의 구분에 대한 생각은 가능할 것도 같다.

가끔씩 하월시아를 보면서 그 아름다움과 가격의 기준, 질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마음의 변화에

대해 고민하기도 한다. 얼마전 하월시아 판매점에 들러서도 주인장께 의미있게 물어봤던 질문 중의

하나가 이부분 이었기도 하다..

 

아름다움과 추함, 미인과 추녀의 차이는 무엇일까?

TV에서 아름답다는 미인과 추녀라 불리는 사람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우리가 수많은 사람을 이렇게 비교하는 기준은 무엇이고 공통된 관점이 있을까?

그 관점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일까? 개인적일 수 있을까?

주변에 의해 받은 영향력에 의한 하나의 허상에 가까운 것일까?

아이적부터 이러한 구분이 뚜렷하다고 들었으니 유전자 속에 감춰진 본능에 가까운 법칙인가?

책을 보면서 나는 그러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만 던지다 책장을 덮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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